어디를갈까?

[스크랩] 국경의 섬 대마도 사진기행(2탄)

두레박사 2007. 1. 4. 18:50

2일차 - 2006년 10월 22일(일)

 

이른 새벽 대마호텔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출발 준비를 합니다. 이 시각에 고향으로부터 비보가 날라 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태연하게 2층으로 내려가 식사를 하고, 예정된 시각인 8시에 호텔을 출발합니다. 출발이라야 도보로 어제의 골목길을 걸어 시청 앞까지 가야 합니다.

 

두 호텔의 일행이 모여 모두 버스를 타고 어제 안주를 구입했던 어항인  타카하마(高浜)항으로 향합니다.

 

 

<타카하마 어항에서>


어제 일행에게 수산물을 판매했다던 어부인 츠쿠미씨가 자연산 전복을 썰어주며 먹기를 권합니다. 아담한 시골마을의 정은 이곳이라고 다를 바 없습니다.

 

 

<츠쿠미씨가 썰어준 전복을 먹으며>

 

동행하신 대마도 관광길을 개척하셨다던 황백현사장님은 몇 킬로그램의 전복을 구입합니다. 해산물은 이곳이 부산보다 더 싸다나요!

 

 

<포장을 하면 이렇게 됩니다>


어항이기는 하지만 채소는 물론 주민들이 생산한 상품을 가지고 모이는 일종의 조그만 번개시장인 듯 합니다.

 

 

 <도 미 솔>

 

 

 <싱싱한 활어를 저 망치로 쳐서>

 

 

<즉석에서 손질합니다>

 

 

<타카하마 어항 즉석 매점>

 

 

<귀여운 자동차>

 

길이 좁아 작아야 편합니다.

 

 

<우리의 전용 버스>

 

버스는 다시 출발을 하여 어제 밤 머문 이즈하라로 돌아갑니다.

 

 

 <대마시청의 붉은기>

 

왠지모르게 붉은기가 섬찟합니다. 아래는 대마시기로 대마시 아래에 여섯개의 정이 있으므로 츠시마의 첫자인 "츠(つ)" 6개를 도안한듯 보입니다.

  

 

<청수산성 안내도>

 

어제 그냥 지나치던 길이 자세히 보니 청수산성이었군요!

 

 

<청수산성>

 

그러고 보니 돌담길로만 여겨왔던 이길이 운치 있는 성곽으로 보입니다.

 

 

<이즈하라 죠카마치 안내도>

 

대마도시청 앞에서 내린 일행은 잠시 츠시마시교류센터 내의 2층에 위치한 100엔샵을 둘러보고는 다시 버스에 올라 카미자카(上見坂) 공원으로 향합니다. 귀신이 나올듯한 좁다란 고갯길을 우리가 탄 대형버스는 잘도 달립니다.

 

 

<카미자카 공원>


버스에서 내린 일행은 잠시 황사장님의 설명을 듣습니다.

 

 

<카미자카공원 안내판>

  
아마 이곳이 옛날 이즈하라쪽의 소우게(宗家)가문과 백제계의 후손이라는 미즈시마(美津島)쪽의 아비루(阿比留)가문 간에 대마도의 우두머리가 되기 위하여 싸움이 심했던 지역인 모양입니다.

 

 

<덕혜옹주의 남편이었던 소타케시의 시비>


이렇게 잔디 언덕 중앙에는 덕혜옹주의 남편이었던 소타케시(宗武志)가 쓴 시비도 세워져 있습니다.

 

섬도 야위었지만, 친구도 야위었다.
고기모양을 깎으면서 잠시 파도를 본다.
하지만 나에게는 꿈이 있다.
말하려다 말고 친구는 웃는다.

심야에 세계지도를 편다.
콤파스를 잡는다.
섬을 축으로 빙글 돌려 본다. <1964년 신대마도지 서문>

 

 

일본의 하이쿠라는 시 같은데...... 의미가 맞는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해석 해 봐야죠!

들 놀이! 넓고 넓은 골짜기를 내려다 보러!  - 히토안즈 - 이름이 살구 한 알이네요!

 

 

<전망대 앞 석제비>

 

쓰시마는 큰 산으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호토토기스- 이름이 두견새네요. 두번째 글자가 馬자가 맞나 모르겠네요.

 

 

<전망대에서 본 대마도의 명산 시라타케>

 

시를 감상하고는 모두 전망대에 올라 주위를 조망합니다. 저 멀리 ‘시라타케(白岳)’가 조화롭게 어울립니다. 한국의 등산객들에게 인기 있는 산이랍니다.

 

 

<찍어오긴 했는데......>

 

나중에라도 시간을 내어 읽어보려고 찍어오기는 했는데, 도저히 사진으로는 판독 불가네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요!

 

 

<카미자카 전망대 앞에서>

 

 

<만제키바시>

 

일행은 다시 버스에 올라 에보시타케(烏帽子岳)로 향합니다. 가는 길에 러일전쟁의 흔적이 남아있는 만제키바시(万関橋)를 건너지만 차에서는 내리지 않고 차창 밖으로만 관광을 합니다.

  

 

<에보시타케 전망대 가는 길>

 

 

 <경사가 급한 계단길입니다> 

 

버스는 신화의 마을을 지나고, 가파른 산길을 올라 주차장에 주차를 합니다. 일행은 정상으로 올라가는 이정표를 따라 산을 오릅니다. 60m라지만 가파른 계단길입니다.

 


산을 오르니 흐린 날씨이긴 하지만 사방이 멋지게 조망됩니다.

 

 

전망대에 올라 잠시 에보시타케(烏帽子岳)라는 이 산의 이름에 대해서 나름대로 생각을 해 봅니다.   

 

 

바로 이 산 밑에는 와타츠미(和多都美)신사가 있는 신화의 마을이고, 까마귀는 영혼을 업고 하늘로 오른다는 신성한 새이기에 이들은 신사의 뒷산인 이 산을 ‘까마귀모자’라는 뜻으로 ‘에보시타케(烏帽子岳)’라 하지 않았을까! 

 

 

아마 맑은 날이었다면 더욱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을텐데...... 하지만 안개낀 아소만의 풍치도 그런대로 좋습니다.

 

 

 

일본의 하롱베이라 불린다는 아소만!  

 

 

이곳으로 내려옵니다!

내려오는 길은 120m입니다만, 아무리 험하다해도 120m! 하지만 그리 험하지 않습니다.

 

 

 

<주차장에서 본 전망대가 있는 에보시타케>

 

 

 <신화의 마을 안내판>

 

이런 생각을 하며, 올라오던 길이 아닌 하산 길을 찾아 전망대를 내려갑니다. 그리고는 주차장 옆에 있는 ‘신화의 마을’안내판을 담아봅니다.

 

 

 

<엔츠지 앞의 이예선생 공적비>

 

이제 버스는 한참을 달려 사가(佐賀)라는 마을의 엔츠지(圓通寺)에 닿았습니다. 절 앞에는 큼직하게 가장 많이 일본을 다녀갔다는 통신사 이예(李藝)선생 공적비가 먼저 일행을 반겨 줍니다.

  

 

 <이예선생 공적비 후면>

 

이예(李藝) 선생은 40여 차례 일본에 통신사로 파견돼 600여명의 조선 포로를 구해내고, 세종 때 삼포조약 체결에 큰 구실을 한 분이랍니다.

 

또 세종의 명을 받아 대장경을 일본 국왕에 전달하고 일본의 자전물레방아와 무쇠로 만든 대포를 조선에 들여오는 등 두 나라간 문화교류에도 큰 업적을 남긴 분이라네요.

 

이 비는 2005년 11월 21일 이예(李藝)선양회와 학성이씨문중의 후손들이 세운 것이라 합니다.

 

 

<원통사임을 알리는 석제비>

  

계단을 오르니 이제야 석제비에 새겨진 엔츠지(圓通寺)라는 절의 이름이 나오는 군요. 일주문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곳은 무로마치(室町)시대 쓰시마 통치의 중심지로 번창한 곳으로 1408년 7대 번주(藩主)인 소-사다시게(宗貞茂)가 지은 저택이었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그런지 절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고려종>


바로 옆에는 종루가 세워져 있습니다. 규모는 작으나 이것이 바로 조선종이라고 하는군요. 9개의 유두와 문양 그리고 울림통 등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는 설명이 들려옵니다.

 

 

<본전(本殿) 건물>

 

이제 일행 중 몇 명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려고 합니다. 저 역시 내부가 궁금하여 따라 들어 갑니다.

 

 

<고려약사여래좌상>


문을 들어서자 아주 눈에 익은 본존불이 일행을 반겨 줍니다. 보통의 일본 절에 모셔진 불상이 아닌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불상임이 금방 느껴져 옵니다.

 

설명을 들으니 고려약사여래좌상이랍니다. 그러고 보니 양옆에 모셔진 요상한 불상 앞에  “역대천황......”이라고 씌어져 있군요.  우리 약사여래의 휘하에 있는 듯 합니다.

 

 

<원통사 내부 / 많은 영혼들이 모셔져 있다.>

 

아무튼 이곳은 10대 소사다쿠니(宗貞国)가 이즈하라(厳原)로 저택을 옮길 때가지 78년간 통치 관청으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지금도 뒤쪽에는 소(宗)가 일족의 묘지가 있다고 합니다. 뒤 쪽 묘지는 갈 수 없었지만 왼쪽 옆에 위치한 공동  묘지의 모습을 담아왔답니다.

 

 

<원통사 옆 묘지>

 

 

<누군지는 모르지만 요시다씨의 묘군요>


벌써 많은 분들이 주차장으로 이동을 하고 있군요! 서둘러서 나가려 하는데, 원통사 계단 앞에 작은 무궁화나무에 꽃 한 송이가 활짝 피어 있네요!

 

 

<원통사 앞의 무궁화 꽃>


일본에서 보는 무궁화 꽃이라 반갑기는 한데, 색깔이 완전히 빨간색이군요! 서둘러서 카메라에 담고는 주차장으로 뛰어 갑니다.

 

 

<빨간색의 무궁화 꽃>

 

이제 버스는 빗방울이 떨어지는 1차선 도로 위를 달려 신라의 충신 박제상 기념비를 찾아갑니다.

 

 

<신라충신 박제상 순국비>

 

"나는 계림(鷄林·신라)의 개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는 되지 않을 것이며, 계림의 모진 종아리는 맞을지언정 왜국의 작록은 받지 않을 것이다."

 

일본에 볼모로 잡혀간 신라 왕자 미사흔을 구하고 자신은 붙잡혀 목숨을 잃은 박제상이 자신을 회유하는 왜왕에게 외쳤던 말이랍니다.

 

대마도는 계림에 속해있는 땅이라고 했는데, 왜 이곳에서 잡혀 순국을 한 것일까요! 아마도 일본 땅 어디에선가에서 순국은 했지만, 가장 가까운 계림의 땅인 이곳에 순국비를 세우게 되었다고 믿고 싶습니다.

 

 

<박제상순국비 옆 설명문>

 

1988년에 건립된 순국비 주변은 깔끔하게 단장돼 있고, 20여 평 바닥에 타일이 깔려있으며 쉼터와 벤치 등 편의시설도 있지만, 인적 없는 황량한 시멘트 포구 앞이라 조금은 쓸쓸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역사적 고증이 찾아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박제상 순국비 앞 포구>

 

 

<순국비 앞 산 위의 풍력 발전소>

 

이제 중식을 위해 우리가 떠날 히타카츠(比田勝)로 향합니다.

 

 

<대마평야와 고속도로>

 

가는 길엔 대마평야와 대마도의 고속도로라고 불린다는 그리 넓지 않은 논과 1km 남짓 되는 직선도로를 달립니다. 1차선 도로지만 대마도에선 가장 길고 곧은 길 이라는군요!

 

 

<대마도의 농촌주택>

 

그리고 가끔은 큼직큼직한 집들도 눈에 띕니다. 아마 많은 땅을 가지고 있어, 직접 쌀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부호의 집이 아닐까요!

 

 

<대마도의 농촌주택>

 

대마도인들은 옛부터 곡식이 귀해 집에 불이나도 식량만은 타지 않도록 따로 곡식저장용 건물을 별도로 가지고 있다고하네요.  

 

 

<잘 가꾸어진 나무숲 길>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자동차는 어두침침한 산림 속을 지나칩니다. 잘 가꾸어진 스기(杉)나무와 히노키(桧)는 부러울 정도입니다. 이곳 대마도의 산림을 팔면 1억2천 일본인구가 3년이나 먹을 양식을 살 수 있을 정도라니 짐작이 되시겠지요!

 

앞자리에 앉은 나는 기사님에게 질문을 두루 던져 봅니다. 우선은 ‘현해탄’이란 단어에 대해서 인데, 대한해협이 아닌 후쿠오카(福岡)쪽 바다가 현해탄이랍니다. 그러니까 현해탄이란 말은 조심스럽게 써야 할 것 같군요.

 

그리고 이곳의 땅값에 관해서 인데요, 보통 평당 3만엔에서 이즈하라(厳原) 중심지는 100만 엔이나 하는 곳도 있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건축비도 20만엔부터라고 하니, 우리와 그렇게 많이 차이가 나지는 않는 것 같군요! 게다가 토지는 외국인에게도 판다고 하네요!

 

이제 늦은 시각이지만 중식을 위해 식당에 도착 했습니다. ‘미나토스시(みなと寿司)’니까 ‘항구초밥’이로 군요.

 

 

 

<중식을 위해 들른 ‘미나토스시’>

 

 

<‘미나도스시’에서 제공된 중식>

 
일행은 좁은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안내되었고, 뒤이어 나온 식사는 몇 가락의 면이 담긴 우동과 김밥두개, 그리고 유부초밥 두덩이! 보통 일본의 중식은 거의가 이렇다고......


그래도 다 먹고 나니 그런대로 견딜 만 합니다.

식사 후 안내된 곳은 그리 멀지 않은 와니우라(鰐浦)의 한국전망대였습니다.

 

 

<한국전망대로 가는 길>

 

 

<와니우라에 위치한 한국전망대>

 

 

<한국전망대 앞의 조선역관사 순난비>


도착하자마자 일행은 조선역관사순난비(朝鮮譯官使殉難碑)앞에서 일제히 묵념을 올렸지요.

 

 

<순국하신 영령들의 명단>


1703년 2월 5일 밤, 대마도 북단 와니우라(鰐浦)해변에서는 아무도 생각지 못한 큰 사고가 일어납니다.

 

대마번 중흥의 영주라 일컬었던 제21대 도주 소오요시자네(宗義眞)에 대한 조문과, 새 도주 소오요시미치(宗義方)가 에도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대마도로 들어오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 떠났던 조선의 도해역관 일행 108명과 대마번사 4명을 포함 112명 전원이 이곳에서 좌초 익사했다고 하네요.

 

 

<안내문 비>


생존자 없이 시신 몇 구만 건졌을 뿐이었답니다. 외교임무를 수행하는 역관 일행들의 익사였던 만큼 대마도 측에서 전전긍긍하였고, 조선도 대마도측이 일부러 구조를 방기하거나 대마도에 오르지 못하도록 해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사고로 조선과 대마도 간의 관계가 경직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조선역관사순난비 앞에서>

 

그러나 양국간의 선린우호를 위한 공무수행 중 순직한 이들의 죽음은 까마득하게 잊혀져 갔고, 그들이 죽은 지 280년이 지난 1990년, 와니우라(鰐浦)언덕에 한국과 대마도 사람들의 성원으로 이들의 순직을 기리기 위해 112개의 돌로 이 비석을 세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조상들의 영혼이 잠든 이곳에서 묵념을 올리지 않을 수 없지요. 그리고 이렇게 기념사진도 담아봅니다.

 

 

<방위표가 그려져 있네요> 

 

 

<저 쪽이 우리나라 부산입니다>

 

 

<일본 자위대 기지>


비는 촉촉이 내리고 있지만 이제 전망대에 올라 한국 쪽을 바라보려합니다. 그러나 비 내리는 전망대에서 한국이 보일 리 없지요. 다만 바로 앞의 자위대 건물만이 보일뿐입니다.

 

 

<전망대 아래마을>

 

언덕아래 마을을 굽어봅니다.
108인의 영혼을 달래주듯 소리 없이 내리는 빗줄기 사이로 더없이 고요한 마을의 정경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전망대 아래 마을>

 

문득, 인터넷에서 보았던 “한국전망대에 가면 핸드폰이 터진다.”라는 글귀가 생각나 핸드폰을 켜 봅니다. 과연 읽은 대로 안테나표시가 쫙~! 올라갑니다. 모두 전화를 꺼내들고 버튼을 눌러보지만 송신이 되질 않습니다.


누군가에 의하면 예전엔 발신까지 되었지만, 지금은 일본 측에서 발신방해 장치를 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쇼핑센타에서>

 

일행은 다시 히타카츠(比田勝)로 이동하여 VALUE라는 쇼핑센타에 내려집니다. 몇몇 일행은 포장마차에서 파는‘타코야키(たこ焼き)와 생맥주를 마시며 동료들이 쇼핑을 마치기를 기다립니다.

 

 

<여행 기념으로 구입한 책>

 

문득, 나는 여행 기념으로 책을 한권 사야겠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서점으로 달려가서 책을 골라봅니다. 물론 한국에도 번역본이 있겠지만, 잊혀져가는 일본어를 공부도 할 겸, 나태해진 내 자신을 좀 바꾸어 봐야 하겠다는 생각에 이 책을 샀습니다. “3주간 계속하면 일생이 바뀐다!” 

 

 

<히타카츠 국제여객터미널 전경>

 

 

<우리를 안내해 준 쓰시마호텔 버스>


이제 일행이 모두모여 항구로 이동을 합니다. 모두 버스에서 짐을 내리고 하루를 같이했던 기사님과도 아쉬운 작별을 합니다.

 

 

<히타카츠항 국제선 터미널>

 

히타카츠(比田勝)항! 국제여객선 터미널치고는 무척이나 작습니다.


모두 히타카츠(比田勝)항 터미널로 들어가 출입국 심사준비를 합니다. 아무래도 출국심사라 그런지 입국 때와는 달리 신속하게 진행됩니다.

 

 

<히타카츠 국제항 부두에서 본 풍경>

 

특별 출구까지 마련해 주어 쉽게 모두 빠져 나옵니다. 밖에 나와 배를 보니 벌써 부산에 갔다가 다시 왔는지 어제 우리가 타고 왔던 바로 그 배입니다.

 

 

<연세 드신 종사자들도 우비차림>


일행은 촉촉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배에 오릅니다.

내 좌석은 B-7 번이라 앞 쪽 줄이지만, 왠지 한잔 술이 생각나 뒤쪽과 바꿉니다. 그 순간 배는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어둠 속에 멀어지는 히타카츠항의 정경>


오후 5시! 드디어 우리를 실은 "씨 플라워 투"호는 움직이기 시작 합니다.  옛 우리 땅, 대마도여 안녕!

 


 

<이틀간의 짧은 일정을 아쉬워하며>

 

배가 부두를 떠나자마자 지난밤 사두었던 일본 술과 맥주! 그리고 고이 간직했던 우리의 소주를 꺼내 마시기 시작합니다. 한잔 술을 걸치니 나도 모르게 슬픔의 눈물이 흐릅니다.

 

 

<1시간 30분 만에 부산 도착>

 

1시간 30분만에 부산에 도착해보니 캄캄한 밤입니다.!

 

함께하신 모든 분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또한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여행을 마치게 해주신 두 분 과장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모두 건강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출처 : 일본어 공부를 위한 일본이야기!
글쓴이 : 산신령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