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3일차(엑상프로방스, 폴 세잔)
유럽여행 3일차 2017. 3. 24. 금, 흐림, 비
오늘은 선진의회 제도 및 자치행정에 대한 비교연구를 위해 마르세유 시의회 기관방문이 예정된 날이다. 마르세유를 여기서는 막세이라 부른다. 아침부터 부슬비는 내리고 공식기관방문에 차량 정체 등을 감안하여 예정시간보다 1시간 일찍 호텔을 출발하였으나 차량정체도 없고 미팅시간 1시간 전에 도착했다.
일찍 출발한 덕에 작은 우산에 의지하며 정갈하고 깨끗한 막세이 시가지를 둘러 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부러움과 여유 낭만의 상징 요트가 즐비한 마르세유 항구를 좀 더 자세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 시청사 앞에는 우리일행을 환영하는 듯 대형플랜카드가 드리워져 있는데 가이드 말에 의하면 에이즈 감염자는 신고해 달라는 홍보 플랜카드란다.
실내 미팅장소에 들어서자 입구에는 국기봉을 갖춘 대형 태극기와 막세이시 기가 우리들을 맞이하여 감동에 감동을 줄 뿐만 아니라 Jean ROATTA 부시장이 직접 나와 행정, 관광, 예산 담당자 등을 직접 대동하고 환대와 질문에 응해준다.
시장이 정책을 입안하면 의회에서는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준다며 집행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강조하는 등 우리의 의회와는 다른 점이 많았지만 집행부와 의회가 주민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 공동 노력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겠다.
부시장은 예정된 100분간의 시간을 아쉬워하며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막세이를 안내하고 홍보하여 주었다. 우리나라 항공사에서 직항으로 노선을 운행 할 예정으로 또 다시 찾아 달라는 인사도 잊지 않는다.
폴 세잔의 고향 “물의도시”라 불리는 엑상프로방스로 이동한다.
12세기 말부터 프로방스의 중심도시로 번영을 누려온 곳.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가지런하게 전지되어 한 여름을 기다리고 있는 메인 스트리트를 지나 노천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한 쿨 미라보거리를 돌아본다. 이름만 들어도 프로방스답다.
볼 것도 많고 파는 물건도 많은데 딱히 내게 필요한 물건은 없는 듯하다. 단지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화장실인데 화장실을 발견 할 수가 없다. 5유로씩 받는 화장실이 있었는데 여기는 유료 화장실도 없다. 조금 커다란 마트가 있어 들려 보았으나 화장실은 없었다. 어렵지만 꾹 참고 점심식사가 예약 되어있는 식당으로 이동하면서 엑상프로방스를 대표한다는 분수대를 만난다. Fontaine De La Rotonde 원형구조에 3명의 여신이 딱 붙어 있는 모습이다. 층층으로 나오는 분수는 예술의 도시답게 잘 어울린다.
예약된 레스토랑에서 생리적 현상을 시원하게 해결하고 아주 근사하게 점심을 즐기고 생소뵈르대 성당(Cathedrale Saint – Sauveur)등 구 시가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물의 도시답게 거리 마다 분수가 있는데 그중에서 웅장하고 장대한 대분수를 만날 수 있었다. 아쉽게도 공사관계로 분수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물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강렬했나를 엿볼 수 있었다. 대분수 광장을 통해 올라가면 수로를 만나게 되는데 조각상을 비롯한 많은 작품을 만날 수 있으며 건물 중앙에는 농경사회를 의미 하는 듯 소 두 마리가 나란히 건물을 지키고 있다. 수로를 지나 언덕으로 올라가면 멀리까지 조망할 수 있는 넓은 정원이 나온다. 정원에는 쉴 수 있는 많은 수목과 조형물이 운치를 더해 준다.
건축물에 대해서 잘 알 수는 없지만 12세기에 시작된 공사는 16세기까지 장기간 이어졌다고 한다. 건립 당시 유행하던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 그리고 이후의 개축 공사로 첨가된 신 고딕 요소가 잘 어우러져 있는 웅장한 건축물로 1840년 대성당은 그 오랜 역사적 가치와 시대를 반영한 뛰어난 건축미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선정되었다고 하며, 성당 안을 들어가 기도를 올릴 수도 있을 분만 아니라 방문객들에게 개방되어 구경도 할 수 있다.
세잔의 아뜰리에(Atelier Cezanne) 프랑스를 대표하는 유명화가 폴 세잔(Paul Cezanne, 1839~1906)이 실제로 거주하면서 작업하고 작품을 만들어내던 공간을 보존하고 있는 2층 건물의 박물관으로 세잔은 '근대 회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작가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하게 된 시기가 바로 이곳에 거주했던 1896년부터라고 한다. 4년 동안 작업에 골몰한 세잔은 1900년경부터 자신의 독특한 화풍을 알리게 된다. 세잔의 죽음 후 그의 작업실의 존재는 사람들로부터 잊혀 졌지만, 그의 작품 및 옷, 그림 도구 등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혹자는 말한다. 인류에 가장 중요한 사과가 있는데 ① 아담과 이브의 사과 ② 뉴턴의 사과 ③ 세잔의 사과 ④ 스티브 잡스의 애플 이라고 말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