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갈까?

아산 현충사(은행나무길)

두레박사 2021. 11. 6. 15:54

2021년 11월 6일 토요일!  은행나무길을 보기 위해 아내와 함께 아산 곡교천으로 향했다.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도착한 곡교천 은행나무길 벌써 많은 관광객들이 보인다.  곡교천 은행나무길은 ‘전국의 아름다운 10대 가로수길’로 선정된 충남 아산의 명소다. 현충사 입구의 곡교천 충무교에서부터 현충사 입구까지 2.2㎞ 길이의 도로에 조성되어 있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곡교천 은행나무길! 아직 절정기가 아닌듯 하다.  우선 현충사를 둘러보고 시간이 허락하면 다시 찾기로 하고 현충사로 향했다. 주차장에는 은행나무가 곱게 물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현충사 경내 주차장도 벌써 만차로 붐 빈다.

날씨도 포근했지만 아직 단풍이 들지 않은 인파가 덜 다니는 음지를 찿아 현충사 경내로 들어 갔다. 지난날에는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입장료가 있었던거 같은데 무료입장이다. 공짜라니 기분도 좋다.

현충사는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면 백암리 일대에 있는 사당으로 사적 제155호. 1704년(숙종 30) 아산의 지방 유생들이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사당건립을 상소함에 따라 1706년에 건립했으며, 그 이듬해 '현충사'로 사액되었다.

정문을 들어서 우측에 연못이 있는데 다산과 다복을 상징하는 엄청 많은 물고기들이 무리를 지어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좀 더 많은 잉어들과 함께 하고자 한다면 자판기에서 잉어 사료를 구입해 던저주면 된다.

다음 백과를 인용하면 현충사는 1865년(고종 2)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이후 황폐화되었다가, 1932년 6월 이충무공유적보존회와 동아일보사가 성금을 모아 중건하여 영정을 봉안했다. 1962년 3월 1일 충청남도에서 경내를 확장하고, 유물전시관을 신축했다.

1967년 3월 18일 현충사를 사적 제155호로 지정했고, 이때 보호구역의 면적은 10만 6,577평이었다. 그후 1973년 5월 현충사 사적보호구역을 21만 6,137평으로 확장·지정했으며, 1974년 4월 42만 4,880평으로 다시 확장했다. 

경역면적은 현재 16만 3,096평이며, 본전(本殿)·구본전(舊本殿)·홍살문·정려(旌閭)·고택(古宅)·활터·유물관 등이 있다.

본전은 이순신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며, 구본전은 배전(拜殿)으로 쓰이며, 홍살문은 사당 경내를 표시하는 문이다. 정려에는 이순신과 이완(李莞)·이홍무(李弘茂)·이봉상(李鳳祥)·이제빈(李悌彬) 등 5명의 편액이 있다. 

또한 고택은 이순신이 성장한 집이며, 활터는 이순신이 활을 쏘며 무예를 익힌 곳이다. 유물관에는 국보 제76호로 정해져 있는 〈난중일기 亂中日記〉·〈서간첩 書簡帖〉·〈임진장초 壬辰狀草〉, 보물 제326호로 지정된 장검(長劒)·옥로·요대·도배구대(桃盃俱臺) 등이 전시되어 있다.

현충사 외곽으로 숲길을 따라 오르면 정말 만산홍옆을 볼 수있다. 특히, 햇빛을 따라 수시로 변하는 형형색색의 잎파리들은 요술 쟁이다.

사당이 있는 현충사는 공원조성 잘되어 남녀노소 누구나 어렵지 않게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다.

코로나 일부 해제 영향일까? 많은 관람객들이 가볍게 담소를 나누며 공원을 거닐며 산책을 즐긴다.

이좋은 계절도 옷 깃을 여미고 앙상한 가지만이 찬 바람을 기다리는 시간이 되겠지? 가을이 지나감을 아쉬워하며 아름다운 단풍에 취해 포즈를 취해본다.

어느 화가, 어느 사진작가가 이토록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 할 수 있을까? 눈을 떼지 못하고 황홀함을 카메라에 잡아 보지만 아쉽게도 잡히지 않아 아쉬움만 남는다.

고택 앞에 자리하고 있는 은행나무. 노오란 은행잎들이 예쁘게 물들어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는 은행나무는 아산 시목이라고 한다. 

은행나무목에서 유일하게 살아 있는 대표적인 교목. 원산지는 중국이며, 온대지역에 분포한다. 생김새가 피라미드형으로 둥그런 기둥처럼 생긴 줄기에 가지가 많이 달리지 않으며, 키 30m, 지름 2.5m까지 자란다. 잎은 부채 모양으로 가운데 있는 V자형의 새김을 중심으로 둘로 나누어져 있다. 은행인 열매는 황색의 바깥껍질과 노란색의 중간껍질로 둘러싸여 있다. 바깥껍질은 악취가 강하다. 

현충사로 올라가는 길..... 현충사는 일제 강점기때 ‘충무공묘소 위토 경매 사건’이 발단이 되어 전국민이 거국적으로 모은 성금으로 1932년 현충사를 중건(重建)하게 되었다. 이후 1967년에 박정희 대통령의 성역화 지시로 순한국식 콘크리트 구조로 된 현재의 현충사로 세워졌고, 기존의 건물은 서편 참배로 옆으로 이전하여 ‘구 현충사’라 부른다. 

현충사에 모셔져 있는 이순신 장군의 영정은 월전 장우성 화백의 1953년도 작품으로 1973년에 국가 표준영정으로 지정되었다. 영정을 그릴 때 친분이 있었던 유성룡(柳成龍)이 쓴 징비록(懲毖錄)이라는 책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용모에 관한 기록을 참고하였다.

담쟁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담쟁이는 주로 바위 밑이나 벼랑에서 자라며 덩굴손의 빨판을 이용하여 바위나 나무를 기어올라간다.

건강찾아 맛찾아! 아내와 함께한 시간 행복했으며 귀가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한 식당에서 유명세를 실감하듯 30여분을 기다려 우렁이 쌈밥정식으로 허기를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