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갈까?

청주 상당산성

두레박사 2021. 6. 4. 23:08

2021년 6월 4일 먹거리 찾아 떠나는 금요여행! 이번 여행은 충청북도 청주시에 위치한 상당산상으로 향했다.  청주 상당산성은 삼국시대 백제가 쌓은 상성으로 알려져 있다. 

산성에 오르기 전 남문 앞 주차장에 주차하고 안내 표지판을 배경으로 오늘 일정을 시작해본다. 상당산성은 1970년 10월1일 사적 제212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상당산성 남문 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즐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어린이들을 동반한  가족단위 단란한 모습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공남문으로 되어있는 남문 마루에 올랐다.  상당산성은 둘레가 4.1km, 높이 3~4m, 면적이 704,609m2에 달하는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상당이라는 명칭은 백제 때 청주의 지명인 상당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영호남과 서울로 통하는 통로를 방어하는 요충지로 크게 주목받았다. 특히 임진왜란을 거쳐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러 군사적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었다. 

공남문을 지나 방문객을 위한 쉼터에서 준비해간 간식을 꺼내 허기를 달래본다. 아마도 이곳을 서남 암문으로 남화문(南和門)이라 부르나 보다. 남쪽 방향 산줄기를 타고 약 1.7km 내려가 것대산 봉수대와 연결되는 위치에 남암문은 위치하고 있다. 남암문을 통해 적군의 후방으로 몰래 빠져나가 포위하거나, 산성 남쪽 교통로를 감시하였다.

이 엄청난 둘레의 산성을 쌓기위해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동원 되었을까? 상상해 보며 그당시 성안 읍민들이 부역이라는 이름하에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까? 상상도 해 본다.

그 당시 상당산성에는 대략 3,500명의 병력과 승군이 배속되어 산성의 유지와 보수를 담당하였다 하니 이 지역이 매우 중요한 요충지 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산성을 쌓은 돌의 색깔과 돌을 다듬은 형태에서 보수한 흔적을 볼 수 있다.

간밤에 내린 비가 그동안 미세먼지 등으로 온통 잿 빛으로 물들였던 하늘을 손에 잡힐 듯 흰 구름 노니는 맑고 깨끗한 하늘을 선사해 주었다.

미호문이라 불리는 서문.  미호문은 조선후기에 새로 다시 쌓아졌다. 동문처럼 서문은 아래 위 2개의 무사석 위에 장대석을 올려 평문 구조로 만들어졌다. 상당산성의 3개 문 중에 가장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성 밖으로 좌우 방어에 쓰이는 옹벽을 만들고 문 안쪽에서 왼쪽으로 돌아야지 문루에 오를 수 있다. 이런 형식은 암문에서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서문에 활용된 까닭은 비용을 줄이고 전술 효과를 늘리는 것에 있다.

 

사진속에 잘 잡히지 않았지만 청주시의 발전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미세먼지 없는 깨끗하고 맑은 하늘! 오늘은 정말 복되고 행복한 날임에 틀림없다. 

상당산성중 일부구간은 돌을 쌓아 만든 돌벽 산성이 아닌 급경사의 지형지물을 이용한 자연 산성도 만날 수 있다.

상당산성이 임진왜란 중인 선조 29년(1596)에 수축된 이후, 숙종 42년(1716년)에서 45년(1719년)까지 충청병사 유성추와 그 후임 이태망 등의 감독으로 대대적으로 성벽에 대한 개축이 이루어졌고, 이듬해에는 성내에 구룡사와 남악사의 2개 사찰과 암문이 마련되었다는 것이 성문 무사석의 기록에 남아 있다. 그 후 여러 번의 수축이 이루어져 성내의 여러 시설인 관아사, 군기고, 창고, 수구, 장대, 포루 등이 완성되었다.

포루는 성벽 안쪽에서 밖을 향해 화포를 발사하기 위해 만든 군사시설이다. 건물을 지어 만든 집 모양을 ‘포루’라고 하고, 성벽에 포혈을 만들고 화포를 배치한 것을 포대라고 한다. 상당산성에는 15곳에 포루를 만들었는데, 평균 240m 간격으로 하나씩 뒀다고 한다.

깨끗하고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방긋방긋 웃음을 선사하는 꿀풀을 만나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잠시 걸음을 멈춰 본다.

이제 하산길이다. 상당산의 높이는 해발 491.5m이다. 그러나 상당산성은 능선을 따라 돌수 있는 둘레길 형태로 조성 되어있어 누구나 쉽게 접근 할 수 있다.

성안으로 물을 끌어들이는 문을 수문이라고 하는데 작은 것은 수구라고 한다. 상당산성에는 물을 내보내기 위한 배수장치로 남문과 동문사이에 수문이 설치되어 많은 성안의 물을 내보냈으나 수문으로 몰려들지 않는 곳의 물을 내 보내기 위해 서쪽 성벽 2곳과 북쪽 성벽 1곳에 수구를 만들었다 한다.

하산길 아름다운 풍경이 발길을 잡는다. 2016년 이억 만리 미국땅 오하이오에서 나이아가라 폭포를 향해 달리던 차창 밖의 모습이 생각나는 시간이다. 

건물 주위를 한바퀴 돌아도 설명 안내 문을 찾을 수 없다. 아마도 동문 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현재 상당산성에는 동문(진동문), 서문(미호문), 남문(공남문)의 3개의 문과 동암문, 남암문의 2개의 암문, 치성 3개소, 수구 3개소가 있다하는데 3개의 문을 제외한 다른 곳 들은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1977년부터 1978년까지 정비공사로 동·남문루와 서문을 다시 세웠다 하는데 아마도 여기가 진동문이 아닐까? 안내 표지문을 찾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보화정(輔和亭)은 상당산성의 동장대이다. 장대는 장군의 지휘와 주변의 감시를 목적으로 세워졌는데,  보화정(輔和亭)이라는 이름으로 동벽과 남벽이 교차하는 모서리 평탄지에 위치하고 있다. `보화정(輔和亭)'이란 `모든 주민들이 화합된 의지로 지킨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보화정에서 내려와 입구에 들어서면 맑은 호숫가 벚나무, 소나무 사이로 둥그스럼한 능선 아래 펼쳐지는 아늑한 성안 마을이 무척 정답다.

성안마을에서 남문(공남문)을 향해 이제 마지막 구간이다. 급경사 같아 보이지만 거리가 얼마 되지 아니하여 약간 헐떡이면 쉽게 오를 수 있다.

처음 시작했던 공남문이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낮설다. 아마도 출발 지점과 반대 방향에서 와서 그럴까?

벚 나무가 우거진 하산길!  봄에는 벚꽃이 만개하여 지금보다 많은 상춘객이 찾을 듯 하다. 벚나무 가지에 기생일까? 공생일까? 아님 벚나무 가지일까? 가로로 뻗은 가지에 세로로 나무가 자라고 있다.

민속자료를 수집하는 한 식당! 달마상이 일행을 반긴다. 오늘도 우리에게 많은 복을 주려나 보다.

건강 찾아! 맛 찾아! 떠나는 금요여행! 오늘도 시원한 막걸리 한잔에 행복을 심어 본다.